1980년대 말 이후 경제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는 거시경제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통화정책의 기능과 운영방식이며, 이러한 방식 중에 최근까지도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아온 것은 바로 인플레이션 타겟팅(Inflation Targeting)일 것이다. 인플레이션 타겟팅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영 특성을 나열하고 이를 기준으로 통화정책 운영체계가 인플레이션 타겟팅인지 여부를 판정한다. 예를 들어 미쉬킨(Mishkin) 교수에 따르면 일국의 통화정책 수립과 집행에서 ①인플레이션의 목표수치 공표 ②물가안정에 대한 제도적 속박 ③통화정책 결정에 있어서 포괄적인 정보변수의 활용 ④시장과의 소통을 통한 통화정책의 투명성 확보 ⑤중앙은행의 책임성과 같은 요인들을 포함하고 있으면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자율 이용한 물가관리 한계 노출
인플레이션 타겟팅은 통화정책의 시차가 길기 때문에 정책당국의 미세조정이 경기변동을 축소시키기는 어렵다는 데에는 과거 통화주의자들과 유사한 견해를 가진다. 다만 차이는 통화주의자들의 통화량은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인플레이션 타겟팅에서는 목표 인플레이션 자체가 통화정책의 최종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통화정책에서의 정책수단(이자율)과 정책목표(인플레이션) 간에 안정적 관계가 성립돼 있다는 그동안의 많은 학문적 이해와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경제사조의 관점에서 보면 인플레이션 타켓팅은 1980년대 이후 합리적 기대가설과 미시적 기초를 배경으로 탄생한 새고전학파(new classical economics)와 새케인즈학파(new Keynesian) 간의 이론적 통합 및 수렴에 의해 탄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론적인 정교함과 수학적인 엄밀성에도 불구하고 경기변동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새고전학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 및 가격경직성에 기반한 새케인즈학파적 견해를 도입함으로써 새신고전학파종합(new neoclassical synthesis)으로 발전한 거시경제 모형은 장기 및 단기에 걸친 다양한 거시경제 현상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해 갔다. 여기서 경제 충격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통화정책 운영방식으로서 인플레이션 타겟팅은 상당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운영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대안 모색과 통화정책의 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가 학계를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타겟팅 아래에서 통화정책 운영의 성공 여부는 단기 또는 중기적 물가전망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가와 정책수단인 이자율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가 얼마나 안정적이냐에 의존한다. 최근 들어 각국이 위기 탈출을 위해 이자율을 0%에 근접시킴에 따라 유동성 함정에 빠졌고 이자율을 이용한 인플레이션 관리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잘 작동하던 통화정책 운영방식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게 됨에 따라 비전통적인 정책수단의 도입이 강구됐다. 또한 물가안정이 금융안정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자 기존 통화정책 체계에 대한 수정과 대안에 대한 요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종전 물가안정 목표에 금융안정 목표까지 추가됐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채택하고 있는 많은 경제가 낮은 인플레이션 아래에서도 실질GDP가 장기간 정체되거나 음(-)의 수준을 보임에 따라 목표 인플레이션에 의존한 인플레이션 타겟팅의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인플레이션 타겟팅은 실제 성장이 잠재성장률과 상당기간 괴리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괴리는 통화정책에 의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이러한 신념은 약화됐으며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대체할 만한 통화정책 운영체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안적 통화정책 운영체계의 대두돼
이러한 모색과정은 두 가지 형태로 이뤄졌다. 한편에서는 기존의 거시경제 모형에 금융 중개기능이나 자산시장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대체하는 통화정책 운용체계 도입을 주장했다. 이러한 대안적 모형 중 하나가 최근 시장통화주의자들(market monetarists)이 제안하는 명목소득 타겟팅(Nominal Income Targeting)이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인플레이션 타겟팅이 물가 안정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거시경제 전체의 균형적 안정이라는 통화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가격과 성장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명목소득을 통화정책 지표로 삼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2010년 9월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명목소득 타겟팅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2011년에 실제 인플레이션이 목표 인플레이션에 비해 1%p나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란은행이 정책금리를 변경하지 않음에 따라 이러한 주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바 있다.
그러나 명목소득 타겟팅을 실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소득의 총량지표(예를 들면 GDP나 GNI)에 대한 시장 예측치가 필요한데 이러한 예측치는 실제 시장에서 형성되지 않아 운영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시장통화주의자들은 이들 소득지표들에 대한 선물시장을 개설할 경우 시장에서 관찰되는 소득지표 예측치를 이용해 통화정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지표들에 대한 예측치가 시장에서 형성되고 거래된다고 하더라도 명목소득 타겟팅의 운용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중에서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점은 명목소득의 산정 및 발표주기의 적시성이 떨어지는데다 잦은 수정으로 통화정책의 투명성과 시장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명목소득 타겟팅이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통화정책 운영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상컨대 향후의 통화정책 운영체계는 거시경제 운영에 보다 더 깊숙이 개입하는 형태로 변모할 것이며 이에 따라 통화정책 당국의 전문성, 독립성, 책임성, 투명성 제고에 대한 요구는 더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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