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명목소득타겟팅의 재부상 [나라경제, 2013.3월]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과 같은 통화정책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명목기준 지표(nominal anchor)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명목기준 지표로는 주로 인플레이션, 환율, 통화량, 명목소득 등이 사용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영국, 캐나다, 스웨덴, 뉴질랜드, 스웨덴, 이스라엘,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통화정책의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정책금리 운용을 통해 자국의 물가 및 대외 화폐가치의 안정을 추구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편의(inflation bias)를 줄이는 유인을 제공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상당히 성공적인 것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러한 통화정책 운용방향이 최근과 같이 심각한 공급측 충격으로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을 때 과연 유용한 정책 방향인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문은 폴 크루그먼, 제프리 프랭클, 크리스티나 로머 등과 같이 정부자본주의(government capitalism)를 지지하는 케인즈학파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강하게 제기됐으나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차기 영란은행 총재로 유력한 마크 카니가 통화정책의 새로운 운영전략으로 명목소득 타깃팅을 채택할 것을 시사하는 가운데 통화이론의 대가인 마이클 우드퍼드 교수 역시 명목소득 타깃팅이 미래지향적 통화정책 운용방향(forward guidance)에 부합한다고 언급해 세간의 관심이 크게 확대됐다.

유동성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금융혁신과 금융규제의 완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통화량의 정의가 모호해지고 측정이 어려워지면서 화폐의 유통속도마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화량과 경제활동 간의 안정적인 관계가 붕괴되자 통화량 목표제를 주장하던 당시의 통화론자들은 유통속도로 조정된 통화량 목표제를 제안했다. 화폐수량설에 따르면 PY=MV의 관계가 성립한다. 여기서 P는 물가, Y는 실질산출 또는 실질소득, M은 통화량 그리고 V는 화폐의 유통속도를 의미한다. 이 관계식은 항등식으로 항상 성립한다. 수정 통화론자들이 설명하는 유통속도로 조정된 통화량은 여기서 MV를 의미하는데 항등식에 따르면 PY와 같다. 즉, MV를 목표로 삼는 것과 PY를 목표를 삼는 것은 동전의 양면으로 PY를 목표로 삼는 것이 바로 명목소득 타깃팅인데 당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로버트 홀이나 그레고리 맨큐와 같은 학자들이 명목소득 타깃팅의 경기안정화 효과가 높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93년 7월에는 당시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통화량 목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회에서 공표한 데 이어 2000년의 수정 연방준비제도법(Federal Reserve Act)에 따라 통화량 목표 범위에 대한 연준의 의회 보고 의무마저 삭제돼 명목소득 타깃팅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명목소득 타깃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디레버리징에 따른 수요 감소에 대응해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명목 기준금리를 0% 수준으로 하락시키면서 이들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문제가 대두됐다. 명목 기준금리가 0%라는 것은 결국 국채에 대한 할인율이 0%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국채가 마치 화폐처럼 취급됨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은 아무런 수익을 제공하지 못하는 국채보다는 수익은 없지만 유동성이 높은 화폐 보유를 선호해 경제내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투자 역시 부진한 양상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일컫는다. 유동성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실질 구매력이 장차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민간에 심어줘 이들이 적극적으로 화폐를 처분해 소비를 늘리려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민간소비의 회복에 따라 기업이익이 증가하고 투자·고용 역시 증가하면서 경제는 유동성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화폐의 실질구매력이 미래에 하락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민간이 신뢰하게 할 것인가이다. 명목소득 타깃팅은 인플레이션 타깃팅보다 이러한 목적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시점이 t1인 <그림 1>은 경제가 추세를 가지고 성장을 하다가 t0 시점에서 외부 충격이 발생해 추세를 이탈해 저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때 인플레이션 타깃팅 아래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①과 같은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할 것이다. 이 경우 명목소득은 종전의 추세보다는 낮은 수준을 보인다. 반면 명목소득 타깃팅 아래에서는 과거의 추세를 기억하고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 ②와 같은 방향으로 통화정책이 운영되고 이때 t1과 t2시점에는 인플레이션 타깃팅보다 더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게 된다. 통화의 과도한 증발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민간의 기대가 형성됨에 따라 소비지출이 확대되고, 이를 예상한 기업은 고용을 증가시켜 생산을 확대한다. 또한 실질이자율(명목이자율·기대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은 기업 및 가계의 채무부담을 경감시켜 소비 및 투자 확대를 가져와 결국 경제는 유동성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 최근 명목소득 타깃팅을 지지하는 논리의 핵심이다.

명목소득 타깃팅의 한계, 물가·산출의 변동성 확대

경제를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명목소득 타깃팅의 유용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명목소득 타깃팅은 통화당국이 명목소득 추세를 감안한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PY = k(어떤 상수)로 나타낼 수 있다. 이 경우 가격(P)과 산출(Y)은 역의 관계가 성립하는데 이러한 관계는 거시경제의 총수요곡선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명목소득 타깃팅 아래에서는 통화정책이 경제의 총수요를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됨을 시사하며 이는 이자율을 통해 총수요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인플레이션 타깃팅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부분이다.

<그림 2>를 통해 살펴보면 명목소득 타깃팅은 명목소득(PY)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가격(P)-산출(Y) 평면에서 AD라고 표시한 쌍곡선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명목소득 타깃팅 아래에서는 통화당국이 단기적으로 AD 곡선상의 임의의 점을 선택할 수 있는 재량이 생긴다. 다시 말해 단기적으로는 A라는 점도 통화정책 운영방향과 합치하고 B라는 점도 통화정책 운영방향과 합치되게 되며 단기공급곡선은 이러한 단기균형을 만족시키도록 이동된다(장기에서는 장기공급곡선, 단기공급곡선, AD가 만나는 점에서 결정되나 단기적 경기변동만을 고려하므로 이를 무시). 만약 중앙은행장의 선호에 따라 성장과 물가에 대한 통화정책 운영방향이 상이하다면 경제는 A와 B점을 오가면서 물가 및 산출의 변동성은 모두 확대돼 거시경제가 불안정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반응준칙인 테일러 준칙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스탠포드대의 존 테일러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최근 인플레이션 타깃팅과 명목소득 타깃팅 논쟁을 과거 1960~1970년대의 통화론자와 케인즈학파 사이에 벌어졌던 준칙과 재량(rule vs. discretion) 논쟁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통화정책이 특정한 준칙을 따르는 것이 사회후생에 더 바람직하다는 합의가 경제학계에서 이뤄졌음을 상기하면서 통화정책 운영방향에 대한 최근의 논의는 무의미함을 지적했다. 위기 상황에는 종전과는 다른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만 이러한 대책은 어디까지나 불황 타개를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장기적인 정책효과는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한편 통화정책 운영방향의 전환은 민간에게 오히려 혼동을 야기해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개연성도 높다. 경기 정상화가 이뤄지면 불황 극복을 위한 재량적 통화정책에 대한 관심은 수그러지게 될 터. 결국 명목소득 타깃팅은 과거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감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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