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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으로 순환출자(順換出資)가 언급되면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순환출자를 통해 재벌들이 자신들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도록 강제할 경우에는 경영권을 잃게 되므로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시각과 골목상권까지 침해하는 재벌들의 행태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통한 경영권 방어의 의미와 골목상권의 침해과정을 검토해 순환출자의 의미와 결과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추가 투자없이 문어발식 경영권 확장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 나가는 것을 순환출자라고 한다. 예컨대 재벌총수가 50억원을 투자하고 일반 공모를 통해 추가로 50억원을 조달해 A사를 설립했다고 하자. 일반 투자자는 분산돼 있으므로 경영권은 재벌총수가 갖게 된다. A사가 설립된 이후 재벌총수가 B사를 설립하도록 A사에 지시하면 A사 관계자는 같은 방법으로 B사를 설립할 수 있다. B사에 50억원을 투자하고 일반 공모로 50억원을 조달해 B사를 설립한다. 이때도 B사의 경영권은 최대주주인 A사가 갖게 되므로, A사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재벌총수는 B사의 경영권도 소유한 셈이 된다.
재벌총수는 (A사를 경유해) B사로 하여금 같은 방법으로 C사를 설립하라고 지시한다. 즉, B사가 50억원을 투자하고 일반 공모로 50억원을 모집하면 C사의 자본금도 100억원이 되며 역시 재벌총수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재벌총수는 C사로 하여금 다시 A사에 50억원을 투자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이제 A사의 자본금은 150억원으로 증가하게 되지만, 경영권은 여전히 재벌총수에게 있다. 전체 자본금인 150억원의 1/3을 직접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1/3을 소유하고 있는 C사도 자신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재벌총수는 50억원만을 투자했는데 이제 순환출자를 통해 A, B, C사의 대주주가 될 뿐만 아니라 A사의 자본금도 50억원이 증액되는 추가적인 혜택까지 누리게 된다. 3개 회사에 실제로 투자된 금액은 200억원인데, 총자본금은 350억원이다. 이 차액을 가공자본이라고 부르며, 이 가공자본이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가 없을 경우와 비교해 보면 총수의 A사 지분율은 50%에서 67%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A사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A사의 B사에 대한 투자금 50억원은 C사를 거쳐 A사로 순환됐으므로 돌려받은 셈이지만 B사의 경영권도 재벌총수에게 있다. 같은 이치가 C사에도 적용된다. 즉, 순환출자를 통해 재벌총수는 추가 투자없이 3개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B사와 C사를 운영하는 가용 자본금으로는 일반투자자들의 자금만 남아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점이다. 나머지 50억원은 순환출자 됐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투자금이 실제 자본금인데 경영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경우 공시제도는 의미가 반감된다. B사의 공시를 보면 자본금 100억원인 회사인데 실제 가용 자본금은 그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B사를 설립할 때 공시를 통해 재벌계열사를 일반 공모한다고 발표한다. 공모의 내용으로 재벌이 50%를 투자하고 나머지를 일반 공모한다고 발표하면 일반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안전한 투자라고 잘못 생각해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순환출자에 참여된 회사에 이익이 발생한다면, 그 이익은 다른 회사들로 분산돼 배당되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10억원의 이익이 B사에게 발생했다면 주주인 A사로 5억원의 배당이 이뤄지고 일반투자자에게 나머지 5억원이 배당된다. 즉, B사의 이익이 A사로 분산되며 이 배당은 다시 A사의 이익이 된다. 더 나아가 A사로 배당된 금액은 A사의 배당으로 통해 주주사인 C사로 다시 배당된다. 실질적으로 A사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고 B사의 일반투자자들의 자금만으로 회사를 운영해 발생한 이익이 A사나 C사의 주주에게도 배당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재벌총수의 입장에서 순환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방법은 매력적이다. 순환출자에 더 많은 회사를 이용하면 별도의 투자없이 더 많은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즉, 순환출자에 이용되는 회사가 C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D도 설립하면 추가 투자 없이도 4개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다면 경영권을 가진 재벌총수에게는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재벌의 입장에서 같은 업종의 회사를 다수 설립하기는 어려우므로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을 설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재벌이 경영권을 추가로 강화하기 위해 여러 업종으로 기업을 확장한다면, 제과점이나 수퍼마켓 같은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업종으로도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출할 수 있는 업종의 숫자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한 계열사 무너지면 연쇄 줄도산 우려 커
한 가지 추가로 생각해볼 점은 재벌총수의 지분율. <그림>을 보면 3개 회사의 총자본 350억원 중 재벌총수의 투자금은 50억원에 불과하므로 지분율은 14% 정도이다. 기업수가 증가하면 이 지분율은 더 낮아질 것은 자명하다. 언론에서 낮은 지분율의 재벌총수가 경영권 행사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기업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순환출자 방식을 이용해 발생하는 취약점도 있다. 만일 B사가 부도가 난다면 A사의 자본 중 50억원이 사라지게 된다. 또한 C사는 자신의 대주주이며 경영권자인 B사가 부도나면 대주주가 사라지게 된다. C사의 경영이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B사는 부도가 나기 전에 C사로 하여금 모기업의 부도를 막도록 할 동기가 크다. 즉,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순환출자에 연관된 다른 계열사들까지 부실해지는 부실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순환출자에 참여한 기업들의 대부분이 함께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이 선단식으로 한꺼번에 도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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